왜 예수님은 우리에게 소금으로 살라고 하셨을까요?

소금은 음식이 썩는 것을 막는 방부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야채와 생선,고기를 그냥 놔두면 며칠 못 가서 다 썩어버리지만 소금으로 절이면 쉽게 썩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보면 구석구석 썩지 않은 곳이 없이 다 부패되어 있습니다.

이 썩은 죄악 세상을 더 이상 썩지 않도록 복음으로 방부하고 정화시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느 곳에 가든지 그곳을 썩지 않게 해야 하고 모든 일에 참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4: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소금은 맛을 내기 때문입니다.

소금은 모양이나 색깔이 아름답지 못하고 영양이 별로 없고 값도 쌉니다. 그러나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어떤 음식도 제 맛이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맛을 내려면 먼저 소금이 음식에 녹아야 합니다. 녹는다는 것은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소금은 맛을 낼 때 가치가 있습니다. 영적인 소금인 크리스찬들은 누가 대단하게 인정하여 주는 대신 무시하고 비방하더라도

가정과 직장과 삶의 현장에서 복음으로 맛을 내야 합니다.

주님은 살 맛나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 우리들에게 겸손과 사랑으로 복음으로 맛을 내고 사랑을 실천하며 섬길 것을 요구하십니다.

소금은 유화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유화작용이란 단단한 것을 부드럽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배추든 무우든 소금에 절이기만 하면 부드러워집니다.

부드러운 것은 화목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너무 삭막하고 화목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을 가지고 가서

분위기를 부드럽고 화목하게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 사명을 잘 감당할 때 세상과 주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됩니다.

소금은 생명력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몸에 필요한 하루 최저 소금 섭취량은 10∼15g 정도라고 합니다. 소금을 너무 많이 먹어도 안되지만

너무 적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노폐물이 배설되지 못해 병이 생기는 것은 물론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조용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사회에 생명력을 제공하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이 이상과 같은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 때 주님은 무섭게 경고하십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밖에 버리워 밟힐 뿐이니라”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는 암염이 많았습니다. 암염을 옮기다 비를 맞게 되면 소금기가 다 빠지게 되어 더 이상 소금으로써의 가치가 없어져버립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소금 된 그리스도인들이 비 맞은 암염처럼 그 맛을 잃어 세상 사람들에게 밟히고 있지 않는지요?

혹시 나 자신도 그 맛을 잃어 세상 사람들에게 비웃음당하는 불쌍한 그리스도인은 아닌지 깊이 묵상해봅니다.

소금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경우 쓸모 없게 되고 밖에 버려지고 사람에게 밟히게 되지만 소금이 사명을 잘 감당할 경우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바닷물의 짠맛을 내는 소금의 양은 2.071%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아주 적은 양입니다.

이제라도 회개하고 소금의 맛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소금의 맛을 회복하면 이 세상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 새롭게 변화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미성숙한 성질대로 살지 말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품위를 유지하며, 세상에 밟히는 무력한 크리스천이 아니라 소금의 사명을 회복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참된 예수 제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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